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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동네

대연동에 대한 깨알 같은 사실들 별별 대연동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 있는 대연동.
지금의 모습으로는 추측하기 힘들지만, 그때 그 시절 대연동엔 이런 별별 모습이 존재했다.
이 기사를 읽고 나면 앞으로 대연동을 보는 시선이 조금 더 특별해질지도 모른다.

대연동에는 커다란 ( 연못 )이 있었다

대연동이란 이름에는 옛 시절, 이 일대의 지형을 가늠할 수 있는 의미가 담겨 있다. ‘대연(大淵)’이란 지명의 한자어를 풀이하면 커다란 연못이라는 뜻이 되는데, 실제로 먼 옛날에는 황령산 골짜기에 커다란 못이 여러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당시에는 지형적 특성을 따 못골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못이 있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이를 한자어로 바꾼 것이 대연이라는 이름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제방을 쌓는 등 지형변화를 거치다가 남구 토지정리계획이 시행되면서 못은 자취를 감추었다. 현재는 대부분 평탄하게 바뀌었기에 그때의 모습을 확인하기 어렵다.

대연동은 한때 도심 속 ( 목장 )으로 주목받았다

대연동을 지나는 버스노선 중에는 ‘낙농마을’이라는 조금 생소한 이름의 코스가 있다. 1960년대, 정부의 낙농진흥책 일환으로 조성돼 부산에서 유일한 목장으로 번영을 누렸던 마을의 이름을 따 붙여진 것이다. 낙농마을, 대룡골, 대동골 등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이름으로 기억하는 이 마을은 조성 초기 낙농 관련 전문가로 자격을 인정받아야 비로소 입주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입주자들은 국유지 임야에 젖소, 돼지, 닭 등을 무상 지원받아 마을의 기틀을 닦았고, 이런 정성 어린 가꿈에 힘입어 80년대 후반에는 마을 전체의 젖소가 6백 마리를 넘을 정도로 번성했다. 하지만 황령터널 축조 공사, 아파트 단지 재개발 등의 이슈로 지금은 그 모습이 사라졌다. 당시 모습은 유튜브 ‘KBS 뉴스 부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연혁신도시는 ( 공동주거지 )로 개발됐다

경성대 인근으로 들어선 대규모 공동주거지 ‘대연혁신도시’의 시작은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들의 지방 이전 정책이 본격화되면서부터였다. 당시 부산에는 총 네 곳의 혁신지구가 선정되었는데 동삼(해양·수산), 문현(금융), 센텀(영화·영상) 그리고 대연이다. 앞선 세 곳이 특정 산업 특화형 지구로 조성됐다면, 대연혁신도시는 이들 이전 기관 종사자들의 공동주거지로 개발됐다는 점에서 그 형태가 조금 다르다. 부산도시공사를 주축으로 2009년 부지조성공사를 시작해 2013년 완공된 대연혁신도시는 사업비만 8,464억 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공사였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이뤄진 개발사업인 만큼 수요자들의 관심이 쏟아지기도 했는데, 당시 공공아파트로서는 처음으로 분양 원가를 실수요자에게 공개해 더욱 의미가 깊다.

* 공공기관이전지원특별법에는 혁신도시 아파트는 원가로 특별 공급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11월 11일, 대연동은 ( 국제추모 )의 공간이 된다

대연동에서 11월 11일의 의미는 묵직하게 전달된다. 매년 11월 11일, 재한유엔기념공원에서 거행되는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부산을 향하여)’ 행사 때문이다. 이날 공원에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와 그 가족, 유족 등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모여 이곳에 영면한 참전용사들을 위한 추모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오전 11시, 사이렌이 울리면 어디에 있든 부산을 향한 애도의 마음이 이어진다. 참고로 11월 11일은 제1차 세계대전이 공식적으로 휴전한 날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20년, 유엔참전용사의 명예선양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11월 11일을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로 지정했다.

황령산에는 ( 용암분출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다

황령산 정상부는 저 멀리 남아메리카 대륙의 안데스 산맥 화산에서 많이 발견되는 ‘안산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황령산이 백악기 말 화산활동 과정에서 형성된 지형인 탓이다. 그런데 화산활동은 이미 오래전에 끝난 황령산이 갑작스레 용암을 분출한다는 소식에 온 도시가 혼비백산에 휩싸인 때가 있었다. 1992년 9월 27일, 황령산 송신탑 아래 등산로에서 용암이 분출되고 있단 소식이 전해지면서이다. 당시 현장은 용융된 암석의 분출로 나무들이 불타고, 분화구로 의심되는 두 개의 작은 구멍이 발견되는 등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고 전해진다. 도시 중앙에 자리한 산인 만큼 국내외 전문가들이 급히 부산을 찾기도 했는데, 다행히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폭발의 가능성은 없다고 결론 내려졌다. 지표의 균열이나 지진이 없었고, 초기 폭발 이후 점점 식고 있다는 점 등이 이를 뒷받침했다. 여전히 원인은 오리무중이지만 이후 황령산은 별 탈 없이 부산을 대표하는 조망 포인트로서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