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부산테마

미로처럼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 서동미로시장

어린 시절 엄마의 손을 잡고 찾던 동네 시장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물을 내뿜는 조개의 살을 능숙하게 발라내던 아주머니의 칼끝, 쫄깃한 반죽에 설탕을 듬뿍 넣어 구워내던 노릇한 호떡의 빛깔,
우렁찬 외침과 함께 튀겨낸 뻥튀기를 두 손 가득 안겨주던 인자한 손길까지.
신선한 재료와 넉넉한 인심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깊고 진한 여운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어쩌면 삭막한 일상에서 잃어버린, 소박하지만 따뜻했던 기억과 온기를 다시 찾기 위해 우리는 시장에 가는지도 모른다.
위치 금정구 서동로141번길 16
안내 010-9606-3030
운영 10:00~22:00(연중무휴)
주차 서동미로시장 공영주차장 이용 (10분마다 200원)
서동미로시장에는 미로처럼 얽힌 골목을 따라 다양한 상점들이 늘어서있다.
채소가게, 반찬가게, 정육점, 잡화점 등 각양각색의 점포들이 다닥다닥 이어져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미로의 풍경과 맞물린다.

세 개의 시장, 하나의 서사

시장은 많은 사람이 모여 여러 가지 상품을 사고파는 장소를 의미한다. 예로부터 물류와 교역의 중심지로,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항상 인산인해를 이뤘다.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는 만남과 교류도 따르기 마련. 그렇게 시장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아드는 역사의 한페이지가 된다. 부산에도 저마다의 역사가 깃든 다양한 시장이 있지만, 금정구 남단에 있는 서동미로시장은 그 이름만큼이나 서사가 남다르다.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몰려들었고, 영주동 이주 정책으로 인해 수많은 이주민이 서동에 정착했다. 이어 금사공단이 조성되면서 많은 노동자가 이곳에 터를 잡았다. 서로 다른 사연을 품은 사람들이 모여들며 서동전통골목시장, 서동향토시장, 서동시장이라는 세 개의 시장이 형성됐다. 그리고 2014년, 세 개의 시장이 하나로 통합되며 마침내 ‘서동미로시장’을 탄생시켰다. 아름다운 길의 ‘미로(美路)’와 어지러운 길의 ‘미로(迷路)’라는 뜻을 함께 지닌 이름처럼 총길이 1.5㎞에, 입구만 무려 아홉 개다. 골목은 복잡하게 이어지지만, 그 안에서 사람과 사람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일반 마트에서는 보기 힘든 달인 물과 전통 장류들이 즐비하다. 여기에 양파, 단호박, 애호박, 말린 버섯까지 생소한 조합이 제법 어울린다. 오직 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광경이다.

골목마다 이어지는 정

온라인 쇼핑과 대형마트가 일상이 된 시대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손맛과 인심이 살아 있는 시장을 찾는다. 얼굴을 마주하며 물건을 사고파는 일, 그 안에는 물건 이상의 정이 오간다. 금정구 주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러봤을 서동미로시장은 명절 대목을 며칠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활력이 넘친다. 제사가 예전만큼 흔하진 않더라도 여전히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큰 줄기임은 분명하다.

시장도 식후경. BTS 지민 맛집으로도 소문난 맛나분식은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인심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모은다. 특히 철판에 지글지글 구워내는 계란만두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미로처럼 이어지는 골목을 따라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게 이어지고, 사과 한 알도 허투루 고르지 않는 꼼꼼한 눈빛이 점포마다 머문다. 시장 바구니 사이로 자연스레 얹어주는 덤은 이곳을 찾아준 사람들을 향한 고마운 마음이자 깊은 애정이다. 골목 안쪽 떡집에서는 방금 쪄낸 송편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맞은편 전집에서는 바삭하게 튀겨지는 새우튀김의 고소한 내음이 솔솔 풍겨온다. 여기저기서 오가는 소소한 대화와 웃음소리가 마치 고향 마을에 온 듯한 편안함을 전해준다. 골목 구석구석을 돌고 나면, 잊고 지냈던 정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저절로 되살아난다.

우래식당은 오래된 정취를 간직한 노포 스타일의 국밥집이다. 부산에 많고 많은 돼지국밥 가게가 있지만, 이곳은 뽀얀 빛깔의 깊고 진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내장이 함께 나오는 수육도 꼭 먹어볼 것.

시장에는 진심이 통한다

유구한 세월만큼이나 서동미로시장도 변화를 맞이했다. 오래된 골목위로 현대적 시설과 디자인을 덧입히며 한층 단장한 것. 정돈된 간판과 깔끔한 아케이드, 아기자기한 벽화가 골목마다 배치돼 시장이 낯선 젊은 세대도 자연스럽게 불러들인다. 특히 문화관광형 시장으로서 다양한 문화공간을 갖춘 점이 여타 시장과는 다른 차별점이다. 그중 서동예술창작공간은 1, 2층 규모의 복합예술문화공간으로, 시장의 북적거림과 함께 예술과 생활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이곳을 지키는 이들 덕분에 서동미로시장은 계속해서 생장하고 있다.
결국 시장의 지속과 명맥은 그곳을 지키는 상인과 그곳을 찾는 사람들로 이어진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드는 공간은 곁에 있는 이와의 따뜻한 연대감을 심어주며, 획일적인 공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서적 공감을 만들어낸다. 현대사회에서 점차 약화하는 공동체의 유대 역시 이곳에서 회복될 수 있다. 시장이라는 만남의 가교가 이 시대에 필요한 이유이다.

푸릇한 채소들이 눈길을 끄는 농산물 상회. 가지런히 쌓인 채소 더미를 살피며, 그중 가장 싱싱해 보이는 걸 고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폐를 주고받는 투박한 손끝에서 왠지 모를 정겨움이 묻어난다.
비릿한 바다 냄새를 따라 가면 팔딱이는 활어로 가득한 생선 가게가 모습을 드러낸다.
기운찬 몸짓을 따라 튀어 오르는 물방울 사이로 시장의 활기가 느껴지고, 한편에는 제사상에 오를 생선들이 가지런히 말라간다.
서동미로시장은 사람과 사람이 오가는 가장 아름다운 길로서 저마다의 일상으로 스며든다.
진심이 통하는 곳이기에 다시 찾게 되는 곳.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에서의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