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은 많은 사람이 모여 여러 가지 상품을 사고파는 장소를 의미한다. 예로부터 물류와 교역의 중심지로,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항상 인산인해를 이뤘다.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는 만남과 교류도 따르기 마련. 그렇게 시장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아드는 역사의 한페이지가 된다. 부산에도 저마다의 역사가 깃든 다양한 시장이 있지만, 금정구 남단에 있는 서동미로시장은 그 이름만큼이나 서사가 남다르다.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몰려들었고, 영주동 이주 정책으로 인해 수많은 이주민이 서동에 정착했다. 이어 금사공단이 조성되면서 많은 노동자가 이곳에 터를 잡았다. 서로 다른 사연을 품은 사람들이 모여들며 서동전통골목시장, 서동향토시장, 서동시장이라는 세 개의 시장이 형성됐다. 그리고 2014년, 세 개의 시장이 하나로 통합되며 마침내 ‘서동미로시장’을 탄생시켰다. 아름다운 길의 ‘미로(美路)’와 어지러운 길의 ‘미로(迷路)’라는 뜻을 함께 지닌 이름처럼 총길이 1.5㎞에, 입구만 무려 아홉 개다. 골목은 복잡하게 이어지지만, 그 안에서 사람과 사람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온라인 쇼핑과 대형마트가 일상이 된 시대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손맛과 인심이 살아 있는 시장을 찾는다. 얼굴을 마주하며 물건을 사고파는 일, 그 안에는 물건 이상의 정이 오간다. 금정구 주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러봤을 서동미로시장은 명절 대목을 며칠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활력이 넘친다. 제사가 예전만큼 흔하진 않더라도 여전히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큰 줄기임은 분명하다.

미로처럼 이어지는 골목을 따라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게 이어지고, 사과 한 알도 허투루 고르지 않는 꼼꼼한 눈빛이 점포마다 머문다. 시장 바구니 사이로 자연스레 얹어주는 덤은 이곳을 찾아준 사람들을 향한 고마운 마음이자 깊은 애정이다. 골목 안쪽 떡집에서는 방금 쪄낸 송편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맞은편 전집에서는 바삭하게 튀겨지는 새우튀김의 고소한 내음이 솔솔 풍겨온다. 여기저기서 오가는 소소한 대화와 웃음소리가 마치 고향 마을에 온 듯한 편안함을 전해준다. 골목 구석구석을 돌고 나면, 잊고 지냈던 정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저절로 되살아난다.

유구한 세월만큼이나 서동미로시장도 변화를 맞이했다. 오래된 골목위로 현대적 시설과 디자인을 덧입히며 한층 단장한 것. 정돈된 간판과 깔끔한 아케이드, 아기자기한 벽화가 골목마다 배치돼 시장이 낯선 젊은 세대도 자연스럽게 불러들인다. 특히 문화관광형 시장으로서 다양한 문화공간을 갖춘 점이 여타 시장과는 다른 차별점이다. 그중 서동예술창작공간은 1, 2층 규모의 복합예술문화공간으로, 시장의 북적거림과 함께 예술과 생활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이곳을 지키는 이들 덕분에 서동미로시장은 계속해서 생장하고 있다.
결국 시장의 지속과 명맥은 그곳을 지키는 상인과 그곳을 찾는 사람들로 이어진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드는 공간은 곁에 있는 이와의 따뜻한 연대감을 심어주며, 획일적인 공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서적 공감을 만들어낸다. 현대사회에서 점차 약화하는 공동체의 유대 역시 이곳에서 회복될 수 있다. 시장이라는 만남의 가교가 이 시대에 필요한 이유이다.


